지난 12월, 아트스페이스 호서의 토요일 정기전이 열렸다. 전시는 보통 작품으로 시작되지만, 이곳의 정기전은 언제나 사람의 말로 먼저 열린다.
작품 앞에서 나오는 짧은 반응들—"이상하다", "웃기다", "잘 모르겠다"—그 말들은 미완성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 전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이다. 정기전은 결과를 정리하는 전시가 아니라, 사고가 드러나는 과정을 허용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사진] 전시장 전경 — 작품은 각자 서 있지만, 질문은 하나의 공간을 공유한다.
일곱 작가, 일곱 개의 시선
이번 정기전에는 일곱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저마다 다른 재료와 형식으로 작업하지만, 이들의 작품은 하나의 공간에서 서로를 비추며 새로운 대화를 만들어냈다.
구경모는 세라믹으로 푸른 빛깔의 추상적 풍경을 만들어낸다. 김주호는 절구이와 페트병, 큐빅을 결합한 독특한 조형으로 〈은하수가 보인다〉를 선보였다.
박미화는 종이에 나무재와 젯소를 사용해 서정적인 인물상을 그려낸다. 이번 전시의 포스터 메인 이미지로 사용된 〈꽃드리러〉가 그의 작품이다. 박준상은 도자기로 인상 쓴 아이들을 빚는다. '시대육아' 시리즈와 12간지, 버드 시리즈를 통해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치유를 동시에 담아낸다.
윤주일은 에폭시와 안료를 사용해 투명하고 몽환적인 형태의 〈검〉을 제작했다. 주후식은 스테인리스 스틸과 도자기로 동물을 형상화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의 강아지 시리즈와 함께 새롭게 시작한 고양이 시리즈를 선보였다. 한애규는 테라코타로 사색에 잠긴 인물을 빚는다. 〈어떤생각〉은 내면을 향한 시선을 담담하게 표현한다.
이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관람자의 반응이 가장 뚜렷하게 갈렸던 두 작가—박준상과 주후식—의 작업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려 한다.
거울이 되는 조각 — 주후식
주후식의 스테인리스 스틸 조형은 반사되는 표면을 통해 관람자의 얼굴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다. 작품을 본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작품 속에 들어와 있다. 그의 작업은 대상이 아니라 시선을 되돌려주는 장치에 가깝다. 형태는 단순하지만, 그 표면은 관람자의 위치와 감정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진다.
이번 전시에서 주후식 작가는 기존의 강아지 시리즈에 더해 고양이 작업을 새롭게 선보였다. 고양이 작품은 흙 자체의 질감을 살린 긁는 기법으로 표현되었고, 등 부분에는 투명한 느낌을 주기 위해 개별 조명을 넣어 연출했다. 특히 이 시리즈는 '길냥이'를 주제로, 폐쇄적인 존재들이 양지로 나올 수 있게 밝혀주는 느낌을 담았다.
[사진] 주후식, Welsh Corgi-Kant, 2022 — 스테인리스 스틸의 반사 표면이 관람자를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다.
주후식 작가와의 대화
이번에 고양이 작업을 새로 시작하셨는데요.
주변에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강아지만 하지 말고 고양이에 대한 애묘인들도 많고. 제 주변에—바로 밑에 작업실에 고양이 기르는 작가가 있는데—언젠가는 해야지 하다가 이번에 진행하게 됐어요.
'길냥이'를 주제로 삼은 이유가 있나요?
제가 만나는 사람이 길냥이를 기르고 있는데 너무 폐쇄적이에요. 그런 것들도 조금 양지로 나올 수 있게, 불편하게 밝혀주는 느낌으로 제작을 하게 됐습니다.
강아지 작업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스테인리스 스틸로 작업해요. 실제 강아지들이 하는 포즈를 캡처해서 만들죠. 반사되는 표면이 특징인데, 보는 사람이 작품 안에 비춰지게 돼요.
인상 쓴 아이들 — 박준상
박준상의 작업은 형태보다 표정이 먼저 들어온다. 아이의 얼굴을 닮은 조형들은 모두 인상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관람자는 웃고 있다. 작가는 이 모순을 의도적으로 유지한다.
작업의 시작점에 대해 묻자 박준상 작가는 아주 개인적인 순간을 꺼내놓았다.
"결혼하고 아이가 100일쯤 됐을 때 너무 힘들어서 샤워를 하는데, 제 미간에 주름이 생겨 있더라고요. '아, 이게 너무 힘든가 보다, 자식 키우기가 힘들구나.' 그런데 방에 들어가니까 아이가 너무 예쁘게 잘 자고 있는 거예요. 심술이 나서 아이 미간에 이렇게 손가락을 대봤어요."
그 순간, 지금까지 받았던 스트레스가 아이의 미소 하나로 싹 날아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 경험이 '시대육아' 시리즈의 출발점이 되었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어른의 얼굴을 아이의 형상으로 바꾸는 순간, 같은 표정이 전혀 다른 감정으로 읽힌다는 것을 작가는 발견했다.
[사진] 박준상, Where is the Bluebird?, 2025 — 머리 위의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파일럿.
그의 대표작 〈Where is the Bluebird?〉에서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인물은 행복을 좇는 우리 자신의 모습에 가깝다. 파일럿 복장을 한 아이가 비행기를 타고 파랑새를 찾아 나서지만, 작품이 조용히 말하듯 파랑새는 늘 머리 위에 있었다. 메테를링크의 동화에서 파랑새가 결국 집에 있었듯이.
이번 전시에는 12간지 시리즈와 올해의 띠인 뱀 대신 선보인 '버드' 시리즈도 함께 전시되었다. 각 작품에는 '낭만(Romance)', '행복(Happiness)' 같은 제목이 붙어 있다. 인간이 새에게 품어온 동경—하늘을 나는 자유, 낭만, 꿈—을 아이의 형상에 담아낸 것이다.
[사진] 박준상의 버드 시리즈 — Romance, Happiness. 서로 다른 형식, 닮은 질문.
박준상 작가와의 대화
'시대육아'라는 제목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아이한테만 있는 미소가 어른들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어른의 얼굴—스트레스 받는 얼굴—을 아이의 형상에 투영시키면 보는 사람들이 다 좋게 보겠구나 싶었죠. 인상 쓰는 어른을 볼 때 느낌이 너무 달라요. 근데 애들은 다 인상 쓰게 만들었는데 보는 사람들이 다 웃어요. 이 시대에 다 스트레스를 받지만, 우리가 왜 사는지에 대해서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풀어내자는 컨셉입니다.
〈Where is the Bluebird?〉 작품의 의미는?
우리가 항상 행복을 찾아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 어른들이 다 고민하고 사잖아요. 근데 파랑새는 항상 머리 위에 있었어요. 메테를링크의 동화에서도 파랑새는 집에 있었대요. 멀리서 찾고 있었던 거죠.
작업하실 때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어떻게 무언가를 만들면 사람들이 웃을까? 그 생각을 하면서 만들어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만들면서도 웃게 되고요. 한 20년 도자기 작업을 하다 보니까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거울과 표정 사이에서
두 작가의 작업은 서로 다르지만, 정기전이라는 맥락 안에서는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우리는 왜 작품 앞에서 이토록 빨리 의미를 확정하려 하는가.
주후식의 작업이 '보는 주체'를 흔든다면, 박준상의 작업은 '느끼는 태도'를 흔든다. 하나는 거울처럼 관람자를 되돌려 세우고, 다른 하나는 웃음이라는 방식으로 관람자의 방어를 풀어낸다. 스테인리스 스틸의 차가운 표면에서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는 경험과, 인상 쓴 아이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웃음 짓는 경험은 결국 같은 지점을 향한다. 작품이 관람자에게 던지는 질문,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스스로를 발견하는 순간.
전시가 남기는 것
정기전은 작품 간의 우열이나 완성도를 가리지 않는다. 대신 각 작품이 어떤 질문을 남기는지에 집중한다. 그래서 이 전시에는 정답처럼 보이는 작품도, 완성처럼 느껴지는 해석도 없다. 남는 것은 오히려 전시장을 나서며 각자 마음속에 생긴 조금 다른 표정들이다.
[사진] 오프닝 리셉션 풍경 — 전시는 끝나지만, 대화는 계속된다.
12월 20일 오프닝 리셉션에는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과 관계자들이 모여 와인과 함께 작품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전시장 곳곳에서 "이상하다", "웃기다"는 반응이 들려왔다. 그 반응들이야말로 정기전이 추구하는 바다.
토요일의 전시는 그 표정들을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매달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이 작품 앞에서 나는 왜 이런 얼굴을 하고 있는가.
그 질문이 다음 전시로 이어지고, 또 다음 대화로 번져간다면 정기전은 제 역할을 다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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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정보
아트스페이스 호서 〈토요일 정기전〉
12 – 12. 27
오프닝 리셉션: 2025. 12. 20
참여 작가: 구경모, 김주호, 박미화, 박준상, 윤주일, 주후식, 한애규
장소: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 9 (서초3동 1463-10) 1층
관람 시간: 오전 10:30 – 오후 6:00 (일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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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상채 아트스페이스 호서 관장, 호서대학교 학과장. 전시를 '보는 공간'이 아니라 사고와 감정이 교차하는 장으로 확장하는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