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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의 기억, 상흔의 미학 — 국립현대미술관 《김창열》 회고전

STAGE 편집부·
미술전시김창열

상흔에서 물방울로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 김창열(1929–2021)의 대규모 회고전 《김창열》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작고 이후 처음 마련된 자리로,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예술로 상흔을 승화시킨 작가의 전 생애와 창작 여정을 총체적으로 조망한다.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난 김창열은 열다섯에 홀로 월남해, 해방과 분단,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전쟁과 죽음을 마주한 기억은 그의 작품 세계 전반에 걸쳐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았다. 1950년대 그는 한국 앵포르멜 운동을 주도하며 거친 질감과 격렬한 붓질로 전쟁의 폐허를 화면에 각인시켰다.

이후 1960년대 뉴욕으로 건너간 그는 세계 미술의 중심에서 새로운 실험을 이어갔다. 그리고 1971년, 마침내 투명한 '물방울'이 등장한다. 앵포르멜의 상흔과 구멍에서 출발해, 뉴욕 시절의 기하학적 실험을 거쳐 도달한 물방울은 김창열 예술의 정수였다.

물방울의 미학

1973년 파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물방울 회화는 곧바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화면 위에 맺힌 물방울들은 현실과 환영 사이를 넘나들며, 초현실주의적 긴장과 극사실주의적 치밀함을 동시에 드러냈다. 프랑스 평론가 알랭 보스케는 그의 작품을 "물질을 재정의하고 정신성을 제시하는 보기 드문 최면력"이라 극찬했다.

이후 김창열은 평생을 물방울에 바쳤다. 캔버스와 모래, 나무, 얼룩과 콜라주 위에 맺힌 수많은 물방울은 각기 다른 질감과 호흡을 품고, 존재에 대한 끝없는 물음을 던진다.

전시의 의의

이번 회고전은 잘 알려진 물방울 회화뿐 아니라, 초기 앵포르멜 작업과 뉴욕 시절의 미공개 작품, 그리고 귀중한 기록 자료까지 폭넓게 아우른다. 관람객은 전쟁의 상흔에서 출발해 물방울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치열한 탐구의 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