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노래가 되어 산을 넘었다
기획

그리움은 노래가 되어 산을 넘었다

그리움은 노래가 되어 산을 넘었다

박경준·2026.07.10
#최영섭

인물 일대기 · 추모 특집

그리움은 노래가 되어 산을 넘었다

국민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남긴 작곡가 최영섭의 삶과 음악

1929. 11. 28. — 2026. 6. 29.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

첫 소절이 시작되는 순간, 우리는 아직 가보지 못한 산을 떠올린다. 기암괴석과 맑은 계곡이 어우러진 금강산의 절경일 수도 있고,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나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의 얼굴일 수도 있다. 한 번도 금강산을 본 적 없는 세대조차 이 노래를 들으면 설명하기 어려운 그리움에 젖는다. 한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 선율이 우리 모두의 기억이 되었기 때문이다.

국민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최영섭 선생이 2026년 6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7세. 특별한 지병 없이 노환으로 몸이 쇠해 요양병원에 입원한 지 엿새 만이었다. 그가 떠난 뒤에도 그의 음악은 남았다. 분단된 산하를 향한 그리움과 조국에 대한 사랑, 우리말과 우리 시의 아름다움을 담은 수백 편의 작품이 이제 그의 삶을 대신해 이야기하고 있다.

강화에서 태어난 음악 소년

최영섭은 1929년 경기도 강화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성장했다. 그의 음악적 출발점은 거창한 공연장이 아니라 교회 주일학교였다. 어린 최영섭은 성가대에서 노래하고 오르간을 연주하며 음악을 만났다. 인천중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밴드부에서 플루트와 트럼펫 등 여러 악기를 익혔다. 훗날 그는 이 시기를 본격적으로 음악을 경험하기 시작한 때라고 회고했다.

해방 후 서울 경복중학교로 전학한 그는 선배 구연소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당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작곡을 가르치던 임동혁에게 작곡법을 사사했다. 악보와 교재를 구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던 시대였다. 비싼 교재비를 걱정하고 엄격한 수업을 견디면서도 그는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다.

1947년, 아직 학생이었던 최영섭은 첫 가곡 〈그리운 옛봄〉을 발표했다. 십 대 후반의 청년이 작곡가로서 첫발을 내디딘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그의 작품에는 ‘그리움’이라는 정서가 자리 잡고 있었다. 훗날 그의 이름을 국민에게 각인시킨 노래 역시 ‘그리운’ 금강산이었으니, 그리움은 어쩌면 그의 음악 인생을 관통한 가장 오래된 언어였는지도 모른다.

전쟁의 한가운데서 지켜낸 음악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에서 김성태 교수에게 작곡을 배운 최영섭은 음악뿐 아니라 문학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박목월을 비롯한 문인들의 강의를 들으며 시와 언어의 감각을 익혔다. 훗날 그가 우리 시에 섬세한 선율을 입힌 수많은 가곡을 남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시절의 문학적 체험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젊은 음악가 앞에는 6·25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이 놓였다. 학교와 일상의 질서가 무너진 상황에서도 그는 음악을 놓지 않았다. 기독교 학생들로 합창단을 조직해 지휘하고 시민과 군인을 위한 위문 활동을 이어갔다. 음악이 배고픔과 두려움을 없애 줄 수는 없었지만, 폐허 속에서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붙들어 주는 힘이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전쟁 이후 최영섭은 인천에서 음악교사로 일하며 합창단과 교회 성가대를 지휘했다. 1954년에는 조병화·조지훈·김영랑 등 한국 시인들의 작품에 곡을 붙인 첫 가곡집 《소라》를 펴냈다. 1956년에는 오페레타 《운림지》를 발표했고, 1957년에는 인천애협교향악단을 창설했다.

그에게 고향 인천은 단순히 태어나고 성장한 장소가 아니었다. 음악가로서 뿌리를 내리고 작곡가와 지휘자, 교육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발견한 터전이었다. 서울 중심으로 형성되던 당시 음악계에서 그는 지역의 연주자들과 악단을 조직하며 인천 음악문화의 기반을 닦았다.

오페라 《운림》 대본을 들고 있는 최영섭

듣는 순간 떠오른 하나의 선율

1961년, 최영섭의 삶을 바꾸고 한국 가곡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쓸 작품이 탄생했다.

당시 KBS는 6·25전쟁 11주년을 맞아 조국 산하와 통일의 염원을 노래할 작품을 기획했다. 작사를 맡은 사람은 최영섭과 마찬가지로 강화 출신인 시인 한상억이었다. 한상억이 들려준 시에는 금강산의 아름다움과 분단으로 인해 그곳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이천 봉 말은 없어도….”

최영섭은 훗날 한상억의 시를 듣는 자리에서 선율이 거의 떠올랐다고 회고했다. 마음속에서 이미 음악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지도를 펼쳐 놓고 금강산과 묘향산을 비롯한 북녘 산하를 바라봤다. 지도 위 산봉우리에 점을 찍고 그 점들을 이어 보니 마치 하나의 멜로디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는 인천 숭의동의 집에서 식사도 잊은 채 밤새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렇게 완성된 노래가 〈그리운 금강산〉이다. 작품은 1961년 9월 KBS교향악단의 연주로 녹음돼 라디오를 통해 처음 방송됐고, 이듬해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칸타타 《아름다운 내 강산》에 포함됐다.

처음부터 독립된 한 곡의 국민가곡으로 만들어진 노래는 아니었다. 그러나 칸타타를 구성한 여러 노래 가운데 〈그리운 금강산〉은 유난히 큰 울림을 남겼다. 노래에는 특정한 개인의 사연을 넘어 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사람들, 북녘에 가족을 두고 온 사람들, 분단된 조국을 바라보던 국민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한 세대의 슬픔에서 모두의 노래로

〈그리운 금강산〉은 발표된 직후부터 빠르게 퍼져 나갔다. 성악가의 독창회뿐 아니라 학교와 방송, 합창단의 무대에서 끊임없이 불렸다. 남북관계가 변화할 때마다, 이산가족이 상봉할 때마다, 해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이 필요할 때마다 이 노래가 울려 퍼졌다.

플라시도 도밍고, 조수미, 안젤라 게오르규와 같은 세계적인 성악가들이 불렀고 볼쇼이합창단을 비롯한 해외 연주단체도 이 곡을 무대에 올렸다. 그렇게 〈그리운 금강산〉은 한국인의 정서를 세계에 전하는 가곡이 됐다.

이 곡의 힘은 금강산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만 있지 않다.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한 그리움,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보편적인 음악으로 바꿔 놓았다는 데 있다. 그래서 금강산을 직접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잃어버린 고향의 노래였고,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는 분단의 아픔을 이해하게 해 주는 노래가 됐다.

그러나 한 작품의 성공이 너무 커지면 그 작곡가가 평생 쌓아 올린 다른 작품들이 가려지기도 한다. 최영섭에게도 〈그리운 금강산〉은 가장 빛나는 대표작인 동시에 그의 방대한 음악세계를 한 곡으로만 기억하게 만드는 거대한 그림자였다.

“나는 조선 사람이다”

최영섭은 가곡과 합창곡, 기악곡, 칸타타,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수백 편의 작품을 남겼다. 아르코예술기록원의 기록을 기준으로 하면 창작 작품은 약 480편이고, 편곡한 국내외 가곡은 약 1,500곡에 이른다. 생애 후기에 발간한 가곡집에는 600곡이 넘는 가곡이 수록됐으며, 이후의 인터뷰에서는 700곡 이상을 썼다고 밝히기도 했다. 집계 기준은 서로 다르지만, 그가 평생 거의 쉼 없이 창작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대표작으로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 〈그리워라 두고 온 그 사람들〉, 〈망향〉, 〈해 뜨는 나라의 아침〉 등이 있다.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작곡한 칸타타 〈오! 사랑하는 나의 조국〉에는 일제강점기의 고난과 분단의 아픔,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최영섭은 서양음악의 형식과 작곡법을 익혔지만, 그 안에 한국인의 마음을 담으려 했다. 그는 구술채록에서 기악곡을 쓸 때의 마음가짐을 “나는 조선 사람이다”라는 말로 설명했다. 서양의 음악어법을 모방하는 데 머물지 않고 우리 민족의 역사와 풍경, 정서를 음악으로 표현하겠다는 작곡가로서의 선언이었다.

그의 작품에 산과 강, 바다, 고향, 조국과 그리움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최영섭에게 음악은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는 일이었고, 이 땅의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방법이었다.

작곡가이자 지휘자, 그리고 교육자

최영섭은 작곡에만 머물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악대학에서 지휘를 공부한 뒤 귀국해 여러 악단을 지휘했고, 한양대학교와 중앙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한국음악협회 부이사장을 비롯한 여러 음악단체의 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 음악계의 발전에도 힘을 보탰다.

1970~1980년대에는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출연해 클래식 음악을 해설했다. 오늘날에는 해설이 있는 음악회와 친절한 클래식 콘텐츠를 쉽게 만날 수 있지만, 당시 클래식은 대중에게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장르였다. 최영섭은 작곡가가 창작실 안에만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음악이 시민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믿었고, 방송과 강연을 통해 작품의 배경과 감상법을 알기 쉽게 전달했다.

그가 남긴 업적은 2001년 서울시문화상, 2009년 은관문화훈장, 2010년 세일문화재단 가곡상 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큰 보상은 자신의 음악이 계속 불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아흔을 넘어서도 피아노 앞에 앉아 곡을 썼다. 1947년 첫 작품을 발표한 이후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창작을 이어 갔다. 노년의 작곡가는 자신이 한국에서 태어나 이 땅에 묻히게 된 것을 영광으로 여긴다며, 향토적 정서를 담으려 애쓴 작품들이 이 땅에 영원히 남는다면 더없이 기쁘겠다는 뜻을 밝혔다.

피아노 앞에서 악보를 살피는 최영섭

클래식의 아버지와 대중음악의 아들

최영섭의 가족 이야기도 한국 음악사의 흥미로운 한 장면을 이룬다. 그의 아들은 록그룹 들국화의 베이시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최성원이다. 〈제주도의 푸른 밤〉, 〈매일 그대와〉 등을 만든 바로 그 음악가다.

아버지는 아들이 클래식 음악가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고 한다. 음악가의 길이 얼마나 어렵고 고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들은 몰래 기타를 연습했고 결국 대중음악가가 됐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장르를 걸었다. 아버지는 한국가곡을, 아들은 포크와 록을 선택했다. 그러나 최영섭은 아들이 만든 〈제주도의 푸른 밤〉에서 가곡의 느낌을 발견했다. 넓게 흐르는 선율과 시적인 가사, 한 장소를 향한 애틋한 마음에는 아버지의 음악과 닮은 정서가 있었다.

금강산을 그리워한 아버지와 제주도의 밤을 노래한 아들. 두 사람의 음악에는 시대와 장르를 넘어 한 장소를 마음속 풍경으로 바꾸어 놓는 힘이 있다. 최성원이 들국화의 무대에서 아버지의 〈그리운 금강산〉을 부른 장면은 클래식과 대중음악으로 갈라졌던 두 길이 다시 만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인천에 세워진 〈그리운 금강산〉 악보 조형물과 생전의 최영섭

돌아가지 못한 금강산, 영원히 남은 노래

최영섭은 생전에 자신의 수기 악보와 평생의 음악 자료를 고향 인천에 기증하기로 했다. 한 작곡가의 기록을 개인의 서랍 속에 남겨 두는 대신, 다음 세대가 보고 연구하고 다시 연주할 수 있도록 고향에 돌려준 것이다.

2026년 6월 29일, 그는 97년의 생을 마쳤다. 그러나 작곡가의 죽음이 곧 음악의 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한 사람의 손을 떠난 음악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우리는 〈그리운 금강산〉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그가 악보 위에 그려 넣은 금강산은 실제의 산이면서 동시에 마음속의 산이다. 갈 수 없기에 더욱 그리운 곳,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사람,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소망이 그 산봉우리마다 겹쳐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노래를 듣는 이유도 달라질 것이다. 분단의 고통을 직접 겪은 세대가 줄어들고 금강산의 기억도 점차 멀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그리운 금강산〉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그 노래가 역사적 기록에만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쯤은 돌아가고 싶은 곳,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 되돌리고 싶은 시간을 품고 살아간다.

최영섭은 그 이름 없는 그리움에 선율을 주었다.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노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빌려 다시 태어난다. 누군가 무대에서 첫 소절을 부르면, 보이지 않던 금강산의 봉우리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노래가 끝난 뒤에도 그 산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작곡가 최영섭은 이제 떠났지만, 그가 만든 그리움은 오늘도 노래가 되어 산을 넘는다.

최영섭 선생님과 발행인 박경준(공연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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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바로보기

최영섭 작곡생활 70주년 기념음악회(제13회 서울우리예술가곡제) 실황. 작곡가의 생전 모습과 〈그리운 금강산〉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iEEoPXMYOc

음악 감상

조수미가 부른 〈그리운 금강산〉, 1998년 독창회 영상입니다. 〈그리운 금강산〉의 대표적인 독창 버전으로 추천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vJH3Ge7BNg

최영섭 작품 전체 모음

〈그리워라 두고 온 그 사람들〉, 〈동강에 실어〉, 〈귀향〉 등 비교적 접하기 어려운 가곡을 포함한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입니다.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LcQcu6MTdePZJVOV2UB-_xPXQ4ututvO

출처

주요 사실관계는 연합뉴스 부고 및 아르코 구술채록 인용 기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리운 금강산〉, 인천광역시 생전 인터뷰를 기준으로 정리했습니다. 유튜브 영상은 게시자에 의해 주소나 공개 상태가 변경될 수 있으므로 실제 발행 직전에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연합뉴스 부고 및 아르코 구술채록 인용 기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리운 금강산〉

인천광역시 생전 인터뷰

AI 마에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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